티스토리 뷰

방산 업계에서 오랫동안 따라다니던 꼬리표가 있었습니다. "성능은 좋다는데 실전 검증이 안 됐다"는 말이었습니다. 아무리 훈련에서 잘 맞춰도, 실제 전장에서 어떤지는 써봐야 안다는 게 무기 구매국들의 솔직한 심리였습니다. 그 꼬리표가 올해 3월 한 번에 떨어져 나갔습니다.

UAE에 실전 배치된 국산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 천궁-II가 이란의 대규모 공습을 상대로 요격 명중률 96%를 기록한 겁니다. 미국의 패트리어트, 이스라엘의 애로우 체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입니다. 이 숫자 하나가 글로벌 방산 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96%라는 숫자가 왜 대단한가요

방공 미사일 체계에서 요격 명중률은 그 무기의 신뢰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훈련 환경이 아니라 실제 교전 상황에서 기록된 수치라는 게 핵심입니다. 적이 대규모 드론과 미사일을 섞어서 쏘는 포화 공격 상황에서도 열 발 중 아홉 발 이상을 잡아냈다는 뜻입니다.

이 성과의 기술적 핵심은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다기능레이더(MFR)입니다. 적의 전투기와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하고 요격 미사일까지 유도하는 복잡한 과정을 단일 레이더 하나로 처리합니다. GaN(질화갈륨) 기반 AESA 레이더 기술을 적용해 전력 효율과 기동성을 동시에 높인 것이 경쟁력의 핵심입니다. 쉽게 말하면, 더 적은 전력으로 더 많은 표적을 더 빠르게 잡아낼 수 있습니다.

K-방산은 언제부터 이렇게 커진 건가요

사실 한국 방산 수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건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연간 수출액이 30억 달러에 못 미쳤습니다. 그러다 2022년, 2023년 2년 연속 10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특히 2022년 폴란드와 맺은 K-2 전차 980대, K-9 자주포 648문, FA-50 경공격기 48대 규모의 약 20조 원짜리 계약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 배경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뒤늦게 국방 강화에 나서면서 무기가 급하게 필요해졌는데, 미국과 유럽 방산업체들은 수요를 감당할 생산 여력이 없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빠른 납기와 검증된 성능,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세 가지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K-방산이 '가성비 명품'이라는 별명을 얻은 건 이때부터입니다.

중동 사태가 오히려 K-방산에는 기회가 됩니다

지금 중동 사태는 한국 경제 전반에는 부담이지만, 방산 업계에는 묘하게 다른 그림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걸프 국가들이 방공 미사일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한국산 천궁-II의 조기 공급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실전 성과까지 나왔으니 구매 의향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식 시장에서도 이 흐름이 바로 반영됐습니다. 중동 사태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등 방산주 주가가 급등하면서 한화그룹 시가총액이 LG그룹을 제치고 재계 4위로 올라서기도 했습니다. 경제 전반이 흔들리는 동안 방산은 반대로 움직이는 독특한 시기입니다.

수출 구조도 바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기를 팔고 끝이었는데, 이제는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무기는 한번 팔면 20~30년을 씁니다. 그 기간 동안 유지·보수(MRO), 부품 공급, 성능 개량이 계속 필요합니다. 구매국 입장에서는 이 후속 지원 역량이 초기 계약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요즘 유럽과 중동 국가들은 계약 조건에 현지 생산 비중, 기술 이전, 정비 체계 구축을 넣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K-2 전차 현지 생산 기지가 이미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한국 방산이 단순 수출을 넘어 현지 군수 생태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겁니다. 업계에서는 이걸 방산 수출 '2단계'라고 부릅니다.

약점도 있습니다, 드론 분야가 숙제입니다

마냥 좋은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현대 전장의 양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저가형 소모성 드론이 핵심 무기로 떠올랐는데, 한국은 이 분야에서 아직 취약합니다. 실제로 우리 군이 북한 무인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폴란드제 드론을 긴급 수입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2천만 원짜리 드론을 막기 위해 50억 원짜리 미사일을 쏘는 건 경제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전쟁이 물량전으로 회귀하는 흐름 속에서 저가형 대량 생산이 가능한 드론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는 게 K-방산의 다음 과제입니다.

방산이 한국 경제의 새 축이 될 수 있을까요

반도체, 자동차, 조선에 이어 방산이 한국의 주요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세계 방산 수출 순위가 9위에서 4위까지 도약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옵니다. 다만 방산 수출은 단순 상업 거래가 아니라 정부 간 외교 관계가 뒷받침돼야 하고, 수출 대상국이 아직 10개 내외로 분산이 부족하다는 구조적 한계도 있습니다.

천궁-II의 96% 요격 성과는 K-방산에 날개를 달아준 사건입니다. 실전 검증이라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진 셈입니다. 앞으로 수출이 어느 나라로, 어떤 무기 체계로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 자체가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궁금한 점은 댓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