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열흘 만에 수출 215억 달러, 근데 기뻐하기가 좀 찜찜한 이유
뉴스를 보다가 눈이 한번 번쩍 뜨였습니다. 3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도 안 되는 기간에 우리나라 수출이 215억 달러를 기록했다는 겁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55.6% 늘어난 수치고, 지난 2월 1~10일 기록한 214억 달러도 한 달 만에 갈아치운 역대 최대입니다. 숫자만 보면 "오, 잘 되고 있네" 싶은데, 기사를 좀 더 읽다 보니 마냥 좋아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폭발적 성장의 주인공은 반도체 하나입니다
3월 상순 수출 호조를 이끈 핵심은 반도체였습니다. 이 기간 반도체 수출액이 75억 8,800만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175.9% 급증했습니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35.3%로, 1년 전보다 15.4%포인트나 높아졌습니다. 쉽게 말해 수출 100달러 중 35달러가 반도체에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급증했냐 하면, AI 붐 때문입니다. 챗GPT 이후 전 세계 데이터센터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AI 연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중심으로 반도체 수요가 치솟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은 덕분에, 미국이 AI 인프라에 돈을 쏟아부을수록 한국 반도체 수출도 함께 올라가는 구조가 만들어진 겁니다.
근데 이 구조가 조금 불안한 이유가 있습니다
수출의 3분의 1 이상을 반도체 단일 품목이 책임지는 상황. 호황일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반대로 반도체 경기가 꺾이는 순간 전체 수출 지표가 함께 흔들리는 '집중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2023년에 반도체 업황이 나빴을 때 우리나라 수출과 경제성장률이 동시에 꺾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제조업들의 상황을 보면 이 불안함이 더 또렷해집니다. 이번 3월 상순에도 선박은 61.9%나 감소했습니다.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철강 같은 주력 품목들도 작년 수출 실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KDI도 반도체를 제외한 부문의 생산 증가세가 미약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수출의 과실이 한 품목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만은 비슷한 구조인데 왜 우리보다 더 잘 됩니까
앞서 소개했던 1인당 국민소득 이야기와도 연결이 됩니다. 대만의 1인당 GNI가 지난해 4만 585달러로 한국을 추월한 핵심 이유가 바로 반도체 의존도 차이입니다. 한국은행도 "대만은 IT 제조업 비중이 우리보다 3배 정도 높아 반도체 호황의 수혜를 훨씬 크게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세계 1위를 굳히면서 AI 투자 수혜를 압도적으로 가져갔습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강하지만,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아직 경쟁력 격차가 있습니다. 같은 반도체 국가지만 세부 구조가 다른 겁니다.
수출은 잘 되는데 왜 경제 성장률은 1%대였나요
지난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1.0%에 그쳤다는 사실과 수출 호조가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수출 잘 되는 반도체 산업과 나머지 경제 사이의 온도 차가 크기 때문입니다. 반도체가 아무리 많이 팔려도, 그 이익이 내수 소비나 서비스업으로 빠르게 퍼지지 않으면 국민 전체가 체감하는 경기는 달라집니다. 아까 자영업 폐업 이야기를 했는데, 수출이 잘 되는 시기에도 동네 식당이 문을 닫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KDI는 올해 성장률을 1.9% 정도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소비 회복세가 맞물리면서 작년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중동 사태로 유가와 환율이 다시 불안해진 지금은 이 전망도 낙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 수출이 늘어난다는 게 마냥 좋은 소식만은 아닌 이유
이번 3월 상순 대미 수출은 일평균 기준으로 43.8% 늘었습니다. 미국의 AI·클라우드 투자가 한국 반도체 수출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한국이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을 미국에 수출하는 나라인 만큼, 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수출 환경이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정부가 대미 투자 관리 특별법을 처리하고 미국과 협의를 이어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관세 폭탄을 피하면서 반도체 수출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이 지금 우리 경제의 핵심 과제 중 하나입니다.
결국 반도체는 기회이자 숙제입니다
지금 반도체 호황은 분명히 한국 경제에 큰 선물입니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전 세계가 메모리와 HBM을 필요로 하고, 그 공급을 한국이 상당 부분 담당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단기간에 따라오기 어려운 기술 우위도 있습니다.
다만 한 품목에 수출의 35%를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하는 건 장기적으로 취약점이 됩니다. 방산, K-콘텐츠, 바이오 같은 다른 성장 축을 키우는 동시에, 반도체 산업에서도 메모리를 넘어 비메모리·파운드리 경쟁력을 높여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수출 숫자가 좋을 때일수록 이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다음에도 이런 경제 흐름을 최대한 쉽게 풀어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반도체나 수출 관련해서 더 궁금한 부분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