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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우리나라가 국제 무대에서 다시금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특히 여러 갈등 속에서도 의장국으로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모습은 중견국으로서 한국의 외교력이 한 단계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민주주의의 회복이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민주주의라고 하면 정치적인 이야기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투자자들에게는 '예측 가능한 환경'을 의미하거든요. 이스라엘 라진 교수의 연구처럼, 민주주의가 탄탄한 나라는 자본 조달 비용이 낮아지고 인재 유출도 적다고 하죠. 결국 이번 APEC은 한국 경제의 근간이 얼마나 튼튼한지 전 세계에 다시 확인시켜준 계기가 된 셈입니다.

정책이 실제 산업으로 연결되는 과정도 인상적입니다. 말로만 끝나는 외교가 아니라 실제 기업들이 고성능 GPU 26만 장을 확보하고 AI 인프라에 뛰어드는 등 구체적인 움직임이 보이고 있으니까요. 반도체부터 인재 양성까지 연결되는 AI 생태계 구축은 이제 우리나라의 국가적 과제가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의 국제 정세가 만만한 것은 아닙니다. 다자 협상보다 양자 협상을 강조하는 트럼프 식의 흐름이 여전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 같은 주요국과는 실리를 챙기는 양자 협상을 하면서도, 디지털 무역이나 탄소중립 같은 새로운 국제 규범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위험을 분산하는 영리한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 코스피 지수가 4,000선을 돌파하며 시장이 뜨거웠던 것도 단순한 유동성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나 자사주 소각 같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노력이 빛을 발하며, 시장이 우리 경제를 다시 평가하기 시작한 '리레이팅'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겠네요. 세제 개편 같은 유인책들이 해외 장기 자본을 끌어들이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결국 외교와 산업, 그리고 자본시장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입니다. 외교가 길을 닦으면 산업이 달리고, 자본시장은 그 가치를 매기는 구조죠. 이 선순환이 계속되려면 정책의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업들도 투명한 공시와 배당 정책으로 시장의 신뢰에 보답해야 하고요.

결론적으로 이번 APEC은 한국이 '위험을 관리할 줄 아는 성숙한 국가'로 재평가받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새로운 약속보다는, 이미 세운 계획들을 차근차근 이행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일일 것입니다. 튼튼한 민주주의 위에서 우리 경제가 어디까지 도약할 수 있을지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