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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8억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점심값을 걱정하는 사람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by ppnnkr 2026. 3. 26.

주변에서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울에 아파트 한 채 갖고 있는데 막상 은퇴하고 나니 매달 쓸 돈이 없다는 겁니다. 자산은 수억인데 현금이 없는 상황,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이상한 게 맞습니다. 그리고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숫자로 보면 문제가 더 선명해집니다

통계청·한국은행·금융감독원이 함께 실시한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한국 가구 자산의 약 70%가 부동산에 묶여 있습니다. 금융자산은 25%에 불과합니다. 60세 이상 가구주는 이 불균형이 더 심해져서 부동산 비중이 78%까지 오르고 금융자산은 19%로 쪼그라듭니다.

65세 이상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약 4억 7,000만 원. 꽤 되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그 대부분이 집입니다. 팔지 않는 한 꺼내 쓸 수 없는 돈입니다. 반면 미국의 경우 65~74세 가구의 금융자산 비중은 약 56%, 부동산은 32%로 한국과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노후에 현금을 쓸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왜 한국은 이렇게 됐을까요

이유는 복잡하지만 큰 줄기는 있습니다. 수십 년간 아파트 가격이 꾸준히 올랐고, 실제로 집을 사서 돈을 번 경험이 세대를 거쳐 반복됐습니다. "부동산이 가장 안전한 투자"라는 인식이 뿌리를 내린 겁니다. 연금 제도가 미국처럼 개인의 투자 선택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했다는 점도 있고,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아 집을 사는 문화도 한몫했습니다.

50대 금융자산 중앙값은 8,100만 원입니다. 평균이 1억 6,000만 원이 넘지만 중앙값이 낮은 건, 소수의 고자산가가 평균을 끌어올리고 나머지 절반은 그보다 훨씬 적다는 뜻입니다. 전문가들은 은퇴 전환기에 필요한 최소 금융자산을 '연간 지출의 3~5배'로 봅니다. 월 300만 원을 쓰는 가구라면 1억 5,000만 원 안팎이 마지노선인데, 50대 절반은 그 선에도 못 미칩니다.

KDI가 짚은 핵심, 연금과 세제 설계

KDI(한국개발연구원)가 3월 13일 언론 기고를 통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부동산에 묶인 자산 구조를 금융 중심으로 바꾸려면 연금 운용과 세제 설계를 손봐야 한다는 겁니다.

IRP(개인형 퇴직연금)를 예로 들면, 한국은 연간 900만 원 한도에 세액공제율 13.2~16.5%를 적용해 실질 혜택이 120만~150만 원 수준입니다. 반면 미국의 IRA는 연간 납입액 전액을 소득공제합니다. 절세 혜택의 크기가 장기 투자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혜택이 작으면 굳이 연금에 돈을 넣을 유인이 줄어들고, 결국 부동산 외 자산 형성이 더뎌집니다.

그렇다면 지금 뭘 할 수 있을까요

제도 개선은 정부 몫이지만, 개인 차원에서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점검이 있습니다. 내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계산해보는 겁니다. 70~80%가 부동산이라면, 노후에 매달 쓸 현금이 얼마나 확보돼 있는지 따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IRP나 연금저축에 넣는 금액을 조금씩 늘리는 것, 퇴직금을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 수령하는 것, 절세 한도를 최대로 채우는 것. 거창한 투자 전략보다 이런 기본적인 구조 조정이 먼저입니다. 수십 년간 형성된 자산 구조를 단숨에 바꿀 수는 없지만, 조금씩 방향을 틀어두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사이의 격차는 10년 뒤 꽤 크게 벌어집니다.

여러분의 자산에서 지금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돈은 얼마인가요. 그 비율이 불편하다면, 지금이 생각해볼 때입니다.